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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한국정치학회보 제43집 제3호
발행연도
2009.9
수록면
51 - 75 (26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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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이승만(雩南굃承晩, 1875-1965)과 백범 김구(白凡金九, 1876-1949)의 지정인식을 비교분석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제국 망국 이전 이승만과 김구는 중국중심적 지정인식으로부터 벗어나 주권독립에 대한 인식을 확립했다. 이러한 인식의 확립에는 근대주권체제의 확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개신교가 큰 영향을 미쳤다. 둘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소련과의 제휴여부를 놓고 내분을 겪을 때에, 이승만과 김구는 공히 소련의 영향력 팽창을 경계하는 입장을 취했다. 셋째,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이승만과 김구의 협력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일본의 지정전략에 맞서는 동시에 중국(아시아)과 미국(태평양)의 지정적 연대를 상징했다. 넷째, 이승만은 태평양으로 팽창하던 미국의 힘과 가치를 중시하면서 중국을 보조적인 협조자로 생각했다. 이에 비해 김구는 순치적 관계에 있는 중국과의 지정적 연결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다섯째, 이승만은 세계의 대세를 통찰하는 거시적 시야를 가지고 있었던데 비해 아시아대륙의 혁명적 열기에 상대적으로 둔감했다면, 김구의 시야는 이승만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소했지만 유라시아대륙의 혁명적 열기에 훨씬 민감했다. 여섯째, 전 세계적 냉전이 악화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한반도를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고자 했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대립구도 속에서 두 사람이 가졌던 지정인식의 공통점 보다는 그 차이점이 전면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광복과 건국에 기여했던 두 인물의 지정인식 상의 공통점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의 균열과 남북한 분단이라는 이중적 단층구조를 뛰어넘고자 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사유에 있어서 중요한 모퉁이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논문요약
1. 서론
2. 지정인식의 형성: 두 인물의 탄생이후 망국이전까지
3.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노선 갈등과 두 인물의 지정인식
4. 아시아-태평양전쟁과 두 인물의 지정인식
5. 결론
〈참고문헌〉
영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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