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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상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동양정치사상사 제11권 제1호
발행연도
2012.3
수록면
119 - 14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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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1807-1876)는 이른바 ‘조선개화파’의 원조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박규수를 단순히 개화파와 실학의 가교(架橋)를 놓은 존재로 인식해서는 당대를 고민하며 살았던 박규수의 정치적 사상적 고투는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 논문은 문명사적 전환기를 치열하게 살았던 인물 박규수를 통해 당시의 조선정계의 한켠에서 진행되었던 혼돈과 고뇌, 정치적 모색에 관해 고찰하는 글이다. 특히 지금까지 거의 전혀 주목되지 않았던 국왕 고종을 가까이서 보좌하며 국왕의 선생으로서 재상(宰相)의 자리에 올랐던 박규수의 정치사적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박규수는 19세기라는 문명사적 전환기, 상이한 패러다임 간의 충돌이 일어나는 와중에서 문명표준이 뒤바뀌는 시대적 상황을 살았던 고뇌하는 지식인이자 현실정치가였다. 그는 자신의 두 눈으로 중화질서가 ‘안과 밖으로 동요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으며, 국내의 민생이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도 무책임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위정자와 지식인들을 접하면서 ‘지켜야할 것과 변통해야할 것’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했던 인물이었다. 당시 박규수는 뭔가 국가 ‘간’ 관계의 패러다임 변화를 감지하는 속에서 조선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 지 어디까지나 유자(儒者)적 관점에서 현실정치가로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현장의 소리를 경청하려했고, 원칙을 존중하되 항시 실용적이고 구체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기존의 개화파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박규수는 개화의 선구자로서 그와 개화파간의 교류에 대해서는 주목 받을 수 있었어도, 국왕을 가까이서 보좌하며 국왕의 선생으로서 그가 갖는 정치사적 의미는 간과되어져 왔다. 당시 조선의 정치구조와 군신(君臣)관계에 대한 이해를 배경으로 박규수의 삶을 차분히 따라가지 않으면 박규수와 국왕의 특별한 정치적 관계는 거대담론의 틈새에 끼어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본고에서는 박규수가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현실정치 공간에서 창출해내지는 못했지만, 청년 국왕 고종의 정치의식을 키워냈다는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목차

논문요약
Ⅰ. 문제의식의 소재
Ⅱ. 박규수와 고종의 운명적인 인연의 고리
Ⅲ. 소년 국왕의 정치의식의 성장과 박규수
Ⅳ. 청년 고종의 대외인식의 전회와 박규수
Ⅴ. 맺음말에 대신하여
〈참고문헌〉

참고문헌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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