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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노태돈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67
발행연도
2012.9
수록면
5 - 26 (22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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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諡號)적인 성격을 지닌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란 왕호가 말해주듯, 광개토왕은 크게 영토를 넓힌 위대한 정복군주로 기억되어 왔다. 그런데 정작 광개토왕비에 의거할 때, 대왕이 공략한 지역은 그렇게 넓은 지역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역사서에서 전하고 있는, 광개토왕대에 후연과의 전쟁과 요동 평야를 병합한 사실이 광개토왕비에는 기술되어 있지 않다. 그 대신에 광개토왕대 초반부터 이미 요동 지역이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있었다는 의미를 담은 서술을 하였다. 광개토왕비에서는 요하 이동의 만주와 한반도의 주민과 지역은 고구려의 천하에 속하는데, 이런 고구려의 지배권에 대한 도전을 하는 나쁜 세력들을 대왕이 격파하고 복속시키었다는 식으로 대왕의 훈적을 기술하였다. 즉 대왕의 정복활동의 결과로 확립되어진 요하 이동 지역에 대한 고구려의 지배권을 대왕의 정복활동의 당위성의 전제로 상정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정복활동에 대한 서술에서 후연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피하였다. 광개토왕 재위 후반에 후연(後燕)은 멸망하였고 이어 등장한 북연(北燕)은 고구려와 우호적 관계를 맺었으며, 그런 상태는 장수왕대에도 이어졌다. 고구려는 북연을 오히려 지원하였다. 그 무렵 동으로 팽창해 나오고 있던 강대한 북위에 대항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에 따라 북연을 위협 하거나 고구려인들의 요서 지역으로 팽창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하는 내용은 광개토
왕비의 서술에서 피하였던 것이다. 광개토왕비의 내용은 대왕 재위 동안 있었던 사실과 장수왕대의 고구려 조정의 정책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5세기 초 이미 대국으로 성장한 고구려의 수도로서 국내성은 좁고 교통이 불편하여 천도를 하여야 할 상황이었다. 당시 고구려 조정은 서쪽으로의 팽창을 더 이상 도모치 않게 되었다. 한편 광개토왕대 이래로 고구려는 한반도로 영토적 팽창을 추구하였고, 평양은 군사적 정치적으로 그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그와 함께 평양이 새로운 수도의 후보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실제 그렇게 되었다. 곧 광개토왕대의 영토적 팽창 양상은 장수왕대의 평양천도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광개토왕의 정복활동
Ⅲ. 고구려 세력권의 구성과 동류의식의 형성
Ⅳ.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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