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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명미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13호
발행연도
2014.3
수록면
83 - 123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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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몽골 관계 및 그에 기반한 권력구조는 공민왕 5년 개혁을 계기로 많은 변화를 보인 가운데에도 그 여파를 남기고 있었으며, 이는 공민왕대 후반 친명정책의 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공민왕은 동왕 5년의 개혁을 마무리하면서 몽골에 요구한 사안들 가운데 한 가지인 ‘덕흥군 송환의 청’을 통해 ‘현재’ 자신의 국왕권에 위협이 되고 있던 기철세력을 자의적으로 주살한 것을 넘어 향후 국왕위와 관련해 또 다른 권력주체로서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갖고 있던 인물의 신병까지 스스로 장악하고자 했다. 이는 현실정치적인 면에서 몽골 황제권이 실질적 최고권이 되는 관계 및 구조를 청산하려는 요구였다.
몽골은 덕흥군을 송환하지 않았으며, 이는 고려-몽골 관계 및 권력구조가 온전히 청산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몽골과의 관계 및 그에 내재한 몽골 복속기 권력구조의 여파는 공민왕 11년 기황후 세력의 폐위시도를 통해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공민왕에 의해 재인식되었다. 공민왕 폐위시도는 무위로 돌아갔지만, 이때의 경험을 통해 공민왕은 몽골이 ‘책봉국’이 되는 관계는 언제든 여건이 되면 동아시아적 관계의 요소와 몽골적 관계의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동왕 5년 이전의 고려-몽골 관계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다 적극적으로 의식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민왕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후사가 없는 상황에서 몽골과 연계되어 있던 瀋王의 존재 의미를 재인식하게 되었다. 공민왕의 신료들에 대한 장악력 또한 확고하지 못한 가운데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유지되고 있던 ‘몽골’과의 관계는 언제든 그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공민왕이 동왕 17년(1368) 明의 大都점령 이후 몽골과의 관계 단절 및 명과의 관계 형성에 다소 강박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고려와 함께 ‘과거’ 몽골과의 관계 및 권력구조에 대한 기억 및 그 관계의 여파가(내부적 상황) ‘현재’의 몽골과의 관계를 통해 공민왕을 압박한 결과물이었다고 생각된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공민왕 5년(1356) 개혁과 德興君 송환의 청
Ⅱ. 공민왕 11년(1362) 폐위시도와 이후의 정국 동향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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