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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李成制 (東北亞歷史財團)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52輯
발행연도
2015.7
수록면
149 - 171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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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隋·唐 帝國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투르크계 북방세력과의 연대를 꾀하였다는 것은 6~7세기 국제관계에서 주목되는 현상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과제와 관련하여 그 동안의 연구는 고구려의 외교가 북방 草原地帶에까지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 나머지 교섭상대였던 투르크계 북방세력의 입장을 살피려는 노력이 부족하였다. 이 때문에 여기에 연동하였을 수·당의 대응에 대해서도 소홀히 다루어졌다.
고구려의 외교를 중시하다보니 시시각각 변하고 있던 국제정세의 흐름이 간과되기도 하였다. 607년 突厥 啓民可汗의 牙帳에서 수 煬帝와 고구려 사신이 遭遇한 사건은 고구려와 돌궐의 연계가 가시화 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사건의 의미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계기가 계민가한이 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과 그러한 움직임을 우려한 양제가 대규모 巡幸으로 돌궐을 굴복시켰다는 점에 있다고 보인다. 이 점에서 예기치 못한 양제의 순행으로 돌궐과 연대하겠다는 고구려의 대외전략은 무산되었지만, 전자의 움직임이 있었기에 그 먼 楡林에까지 나아간 고구려의 외교는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한편 돌궐이 612년 수의 고구려 침공에 참전하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에서 파악된다.
투르크계 북방세력을 상대로 했던 고구려의 외교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은 고구려와 당의 대결기를 다룬 연구에서도 보인다. 645년의 전쟁에서 당군이 철군하게 된 계기를 薛延陀의 침입에 두고 이를 고구려의 외교가 거둔 성과라고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이 突厥蕃將과 蕃兵을 남겨 설연타에 대비케 했음을 간과하고, 安市城 전투의 결과를 과소평가한 데서 비롯된 오해라고 보인다.
한편 설연타를 포함한 鐵勒 諸部가 당에 맞섰다는 사실은 북방 세계의 세력관계 변화와 주도세력의 동향에 주목해야 하며, 그 속에서 당의 대외전략은 어떤 것이었으며 고구려 전쟁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살펴야 함을 알려준다. 이러한 시각에서 필자는 중국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수·당대 墓誌와 투르크계 북방세력이 남긴 자료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구려와 수의 대결과 투르크계 북방세력의 동향
Ⅲ. 당의 투르크계 蕃兵과 고구려
Ⅳ. 신출 자료의 이해와 향후의 과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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