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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부오 (주엽고등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36호
발행연도
2016.4
수록면
1 - 41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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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촌민에 대한 동원방식을 기준으로 삼아 6세기 초중엽에 신라 干群外位의 역할이 변화하는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상고기에 干支는 지역세력을 대표해 6부와의 관계를 주도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6부의 영향력은 이사금기부터 행사되기 시작했다. 마립간기에는 이들에 대해 일괄적 요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소지마립간 9년(487)을 전후해 신라는 간지의 자치적 위계를 外位로 승인해 지역에서 촌민을 동원하는 매개로 삼았다. 중성리비와 냉수리비의 干支-일금지는 기존 간지의 자치적 위계가 외위의 시원적 형태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520년 율령반포를 전후하여 최고 외위는 下干支로 변화했다. 城의 운영을 위한 동원에서 행정촌인 거벌모라의 하간지는 지역세력을 대표해 비간 외위를 거느리고 일반촌의 村使人을 통솔했다. 세부적인 임무는 비간 외위에게 분담되었다. 촌사인의 대부분은 무위호자였고, 촌의 일상적인 운영은 촌주가 담당했을 것이다. 도사는 촌주의 협조를 통해 무외위자에게 촌사인의 직임을 부여함으로써 촌민 동원의 효율성을 추구했다. 율령반포에서는 외위자의 이러한 의무를 법적으로 규정했을 것이다.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別敎令으로 처리방향을 제시했다. 하간지는 도사에 대한 보위자의 성격을 띠었으나, 휘하의 비간 외위와 무외위자를 통솔함으로써 지역세력 대표로서의 자치적 기반을 일정 부분 유지했다.
524년~551년 사이에 干支上干支撰干支가 첨설되었고, 561년 이전에 貴干[4등] 高干[3등] 述干[2등]이 추가되었다. 이 과정에서 간군 외위는 성촌의 운영과 관련된 전문적인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임무가 비간 외위의 임무와 중복됨으로써 기존 干位의 배타적 위상은 약화되었다. 간군 외위는 성촌을 벗어난 요충지로의 촌민 동원, 변경 성에 대한 주둔군 충원, 軍主의 작전을 위한 긴급한 동원 등에서 책임을 졌다. 干支는 지역세력의 대표가 아니라 간군 외위의 하위자로 자리매김되었다. 간군 외위의 자치적 기반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이들은 간층을 계승한 유력자로서 지방관의 보위자라는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간군 외위의 상향분화는 전략적 요충지의 지역세력을 우대하는 동시에 동원체제를 강화하는 정책의 결과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일반촌에서도 비간 외위를 확대하여 촌민 동원의 효율성을 도모했다. 이상의 변화는 진흥왕대인 6세기 중엽에 신라가 영역을 급격히 확장하고 유지하는 바탕이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중성리비 냉수리비를 통해 본 村民 동원방식과 干支
Ⅲ. 봉평비에 나타난 村民동원방식과 下干支
Ⅳ. 干群外位의 상향분화와 村民동원방식의 변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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