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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경진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東亞人文學 第38輯
발행연도
2017.3
수록면
189 - 22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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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8월 13일에 건륭제가 80회 탄신을 맞게 되자 조선왕 정조는 4년 전에 이미 “황인점을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로, 서호수를 부사로, 김이희를 서장관으로 삼아” 축하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왕 조지3세는 1792년 9월에 조지 맥카트니를 단장으로, 조지 스탠튼을 부단장으로 하는 700여 명의 축하사절단을 파견하였는데, 포트머스항을 출발한 이 사절단은 1793년 6월에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이 두 사절단은 각기 다른 형태의 기록을 남겼다. 조선 사절단은 당연히 한자(漢字)와 정음(正音)으로 기록된 연행록을 남겼고, 영국 사절단은 영어 기행문과 수채화(水彩畵)라는 수단을 통해 청나라에서 보고들은 사실을 기록하였다.
1790년 조선 사절단 가운데 부사 서호수가 기행문을 남긴 것처럼 1792년의 영국 사절단에서도 부단장 스탠튼이 영어 기행문 An Authentic Account of Embassy from the King of Great Britain to the Emperor of China 를 남겼으며, 수행화가 윌리엄 알렉산더(Willam Alexander)가 수채화 수십 점을 남겼는데, 중국의 문물을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이 너무나도 달랐다. 조선인이 시인에 관심을 가졌다면, 영국인은 군인에 관심을 가졌다. 조선인이 아름다운 여인에 관심을 가졌다면, 영국인은 일하는 여인에 관심을 가졌다. 조선은 중국을 가상 적국으로 인식하지 않았기에 한자문화권의 상국으로 인식한데 반해, 영국은 중국대륙을 상업적으로 또는 무력적으로 침략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기행문을 작성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두 나라 사절단이 거쳐간 길
Ⅲ. 건륭제(乾隆帝)에 대한 묘사
Ⅳ. 시인과 군인
Ⅴ. 노는 여성과 일하는 여성
Ⅵ. 전통적인 옷감과 최신 과학문명기기 선물
Ⅶ. 맺음말 - 귀국 이후의 파급효과
【參考文獻】
〈Abstract〉

참고문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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