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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남정호 (대구외국어고등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07집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1 - 37 (37page)
DOI
10.52271/PKHS.2018.06.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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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660년 당과 신라 연합군의 백제 공격 전쟁에 대해 중국 사서들과 한국 사서들이 남긴 기록의 차이점에 주목하여 당시 이 전쟁에 대한 당과 신라의 인식 차이를 살펴보고,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낳은 출발점인 소정방과 김유신 간에 벌어진 갈등 사건의 성격과 그 배경을 밝힌 것이다.
660년 백제 공격 전쟁에 대해 중국 사서들은 웅진강구 전투와 사비성 남쪽 전투를 중요하게 서술한 반면 신라측 사료에는 황산벌 전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런 차이점은 당은 660년 전쟁에서 신라군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당군이 주역이었다고 생각하였고, 신라는 그러한 당의 인식에 맞서 신라군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양국 간의 갈등은 당시 소정방과 김유신의 갈등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갈등으로 신라측 자료에서는 소정방을 폄훼하거나 신라군의 군기 위반을 감추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양국 간의 갈등은 당과 신라 간에 전쟁이 발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러한 양국 간의 미묘한 신경전의 출발점이 된 660년의 소정방과 김유신간의 갈등 사건은 작전지휘권 및 편의종사권 문제였다. 이러한 신라군의 군기 위반에 대해 신라측에서는 황산벌 전투를 내세워 항변하였지만, 사실 이는 김유신이 신라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술 운영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당은 신라군이 백제 평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랐는데, 신라군이 군기를 지키지 못하면서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이 갈등은 당과 신라 양국 지휘관들이 자국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전술 운용, 즉 자국 이기주의의 충돌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관련 잔존 사료의 특징
Ⅲ. 당과 신라의 갈등 양상
Ⅳ. 소정방과 김유신 간의 갈등 발생 배경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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