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러한 ‘리일분수’의 관점을 지양하고, 어울림이라는 관점으로 <서명>의 논리 구조를 분석한다. 왜냐하면 기(氣)를 초월하는 리(理)의 선차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리의 하위 개념으로 기를 규정하는 ‘리일분수’의 관점으로는 리(理)를 기(氣)의 조리로 여기며 기와 리의 어울림을 중시하는 <서명>의 우주관을 바르게 규명하는 면에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서명>의 저자인 장재는 이 우주를 큰 어울림[太和]으로 여긴다. <서명>의 관점에 의하면 모든 존재 근거는 서로 다른 성질의 음과 양으로 구성된 태허(太虛)로서의 기(氣)이다. 리(理)는 기를 초월하여 기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 안에 있는 기의 규율이다. 하늘과 땅은 이러한 기와 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질서 있게 운행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생겨난 사람은 하늘과 땅의 어울림을 본받아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만물 역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생겨난 것으로 사람과 함께 어울려야 할 대상이다.
<서명>의 이러한 관점은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내 안에 귀속시키거나 나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에 귀속시키는 동일화의 논리나 상대를 배타적으로 밀어내는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건강한 공동체 문화의 건설을 위해 평화롭게 협의하고 합의하는 어울림의 논리에 부합한다. 곧 <서명>은 음과 양의 어울림, 기와 리의 어울림, 하늘과 땅의 어울림, 사람과 천지(天地)의 어울림,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울림, 나와 부모의 어울림, 나와 형제 및 형제와 형제의 어울림, 나와 뭇사람 및 뭇사람들끼리의 어울림, 사람과 만물의 어울림 등의 논리 구조를 띠고 있다. 세계에 존재하는 존재자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로운 어울림의 문화를 형성하고자 하는 <서명>의 이러한 사상은 오늘날 이기심을 토대로 하는 배타적인 경쟁의식의 확대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양극화와 환경 파괴를 비롯한 온갖 소외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면에 사상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