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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45권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229 - 25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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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이 독립운동의 과정에서 형성되었음을 밝힌 것이다. 조선은 1897년 국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도로서 대한제국 수립을 세계에 공표했다. 그와 함께 대한제국의 다른 이름인 한국 또는 대한국이란 명칭이 국권 주체로서 부상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해 사실상의 주권을 상실하고, 1910년 대한제국은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대한제국이 망했다 하더라도, 한국인의 정신과 혼마저 망실된 것은 아니었다. 망국 이후 해외 한인사회에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노력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독립운동계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한국의 정체성을 발전시켜 나갔다. 박은식은 새로운 나라 건설을 위해 ‘민족의 혼과 얼’을 강조하면서 1915년 『한국통사』를 짓고, 신규식은 『한국혼』을 간행하면서 한국 독립운동의 정신을 밝혀 나갔다. 미주에서는 대한인국민회, 연해주에서는 대한광복군정부 등을 세워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렸고, 국내 독립운동계는 대한광복회와 같은 혁명단체를 만들어 민족혁명을 전개해 갔다. ‘대한’과 ‘한국’은 곧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정신적 뿌리를 이루어 나갔던 것이다. 1919년 3·1운동 때는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주권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독립운동의 논리와 새롭게 건설할 독립국가의 이념과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선포할 수 있었다. 대한제국으로 망한 나라를 10년 만에 독립운동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세운 것이었다. 비록 영토와 국민적 요소를 채 갖추지 못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민족의 주권 의지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임시정부의 수반과 지도자를 대통령, 국무총리라 명명한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나라를 잃은 상태라 부득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 세워야 했으나, 27년간 민족적 구심체로서 광복의 그 날까지 독립운동을 이끌어 나갔다. 반면에 식민지 통치체제에 놓인 국내에서는 ‘대한’, ‘한국’이란 이름은 사라져야 했다. 국권과 주권을 상징하는 ‘대한’, ‘한국’이란 용어를 일제가 철저하게 말살했기 때문이다. 대신 조선총독부를 비롯해 조선군, 조선은행 등 모든 식민기관은 물론 사회단체까지 ‘조선’으로 대체되었다. 국내에서는 1945년 광복까지 지상(地上)에서는 ‘한국’, ‘대한’, ‘한국인’이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단지 일본 식민지 통치에 순응하는 ‘조선인’의 삶만이 강요될 뿐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조선인’들이 ‘한국인’임을 망각한 채 ‘천황의 신민(臣民)’으로 길들여져 갔다. 그것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독립운동 단체는 어느 곳이라도 ‘한국’, ‘대한’, ‘한인’ 등을 명칭으로 삼아, ‘한국’, ‘대한’의 정신을 계승해 나갔다. 즉 ‘한국’, ‘대한’의 정신은 독립운동을 통해 계승, 발전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성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승계되어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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