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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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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86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5 - 54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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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분단이 없었으면 한국전쟁도 없었다. 한국전쟁처럼 한반도 분단도 한반도 주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변 강대국의 지정학적 판단과 전략적 이해관계 안에서 결정되었다. 한국전쟁의 전개과정처럼 한국 분단도 한반도를 둘러싼 제국들의 한반도 전략을 이해하지 않고는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스탈린은 왜 트루만의 38선 안을 받아들였을까?`우선 스탈린은 38선 이북을 소련이 단독으로 관할할 지역으로 이해했을 수 있다. 소련은 38선 이북을, 미국과 영국과 중국이 38선 이남을 관할한다면 소련에게 유리한 제안일 수 있다. 38선을 수용한 스탈린의 결정을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는 미국의 핵무기이다. 일반명령1호가 스탈린에게 전달된 시기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직후이다. 근래 연구에 의하면 1943년에서 1953년까지 미국 군사력에 대한 소련의 첩보활동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스탈린은 미국의 군사력의 실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듯 행동함으로써 포츠담과 런던 회담에서 미국의 우월한 군사력이 실제적인 결과물을 얻어내지 못하도록 하는데 성공했지만, 미국의 핵독점이 만들어낸 힘의 불균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미국의 38선 제안을 거부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스탈린이 38선 안을 받아들인 데에는 조건이 있었다. 일본의 쿠릴 열도에 속하는 모든 섬과 일본 본토의 후카이도 북부를 소련이 점령하는 일이다. 그러나 트루만은 일본 본토에 대한 소련의 개입을 용납할 수 없었다. 원자폭탄 투하 이후 미국 행정부의 대소 외교는 전례 없이 강경해졌고 스탈린은 한반도 남부를 미국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오는 데에는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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