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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슬라브硏究 슬라브硏究 제29권 제1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29 - 61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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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알렉산드르 3세 시기 정보의 생산-유통-향유의 과정에 공권력이 어떠한 수준과 방식으로 간여했는지를 규명한다. 검열의 주체, 기구, 범위, 기준, 절차, 방법 등 검열을 구성하는 제반 요소들에 주목해 당대 검열의 작동 메커니즘을 파악하고자 했다. 특히 검열의 근간이 된 1882년 임시법과 그 제정 및 시행 과정을 고찰했다. 또한, 검열과 사회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검열정책과 언론출판의 변화 양상도 함께 살폈다. 알렉산드르 3세 시기 국내 정치의 보편적 경향은 60~70년대 개혁의 ‘재검토’와 ‘수정’이라는 반동적 진로에 의해 표출된다. 철저한 보수주의자인 신성종무원장 포베도노스체프는 알렉산드르 3세의 통치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국가 이데올로기의 수립자였다. 그의 이념에 기초하여 검열정책을 실질적으로 수행한 대표적 인물은 드미트리 톨스토이와 페옥티스토프였다. ‘검열의 삼인방’으로 지칭할 수 있는 이들은 이전 통치기의 개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들의 관점에서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은 전통적 국가체제를 파괴하고 혁명운동의 발전을 촉진시킴으로써 러시아의 현실을 파국으로 몰고 간 주원인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활동은 1860~1870년대 개혁의 결과들을 반동 노선을 통해 중화시키는 데 집중되었다. 1882년 임시법ꡕ과 검열 삼인방의 활동을 기반으로 한 알렉산드르 3세 시기의 검열정책에는 크게 세 가지의 특성이 혼재되어 있다. 첫째, 1882년 임시법ꡕ을 근거로 한 폭압적 검열, 둘째, 지원금 제도를 활용한 친정부적 보수매체 육성, 셋째, ‘소매금지’와 ‘광고금지’ 조치를 통한 경제적 검열이다. 표면적으로 혁명적 분위기가 감소했다는 점에서 알렉산드르 3세 치세 검열정책은 그 궁극적인 목적을 한시적으로 달성했다. 그러나 경제적 검열로의 전환 과정은 ‘반동의 시대’라는 기존의 평가와는 구별되는 기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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