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松本智也 (리쓰메이칸대학(立命館大學))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66집
발행연도
2019.11
수록면
223 - 269 (47page)
DOI
10.18496/kjhr.2019.11.66.223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쓰시마 유학자인 아메노모리 호슈는 『隣交始末物語』속에서 “쓰시마는 고대 이래 일본 내에서 번병 제일의 요지였다”고 하는 주장을 표함으로써 에도막부에 쓰시마번에 대한 경제원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미쓰야마 라이카는 호슈의 논의에는 근거가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를 감안하여 본고에서는 ‘번병’ 언설을 중심으로 한 쓰시마번의 논리에 ‘역사적 근거’가 부여되어 가는 과정을 쓰시마의 역사서 편찬을 통해서 검토하였다.
라이카의 주장 이전, 18세기 초기에 스야마 도쓰안은 쓰시마가 ‘조선의 번신’이 아니라 ‘일본의 번신’이라고 하였다. 또 도(藤)씨의『對州編年略』은 쓰시마가 ‘번병’이었던 기원을 신화 시대로 설정하였다. 19세기 초기에 집필된 『津島紀事』는 라이카의 문제제기를 배경으로 삼아 선행하는 쓰시마 역사서를 답습하는 형태로 편집되었다. 이는 일본 고대 역사서의 서술내용과 도쿠가와 시기인 현재 상황을 병기하고 쓰시마가 고대 ‘일본의 번병’으로서 조선과의 통교를 맡고 있었다는 사실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고대와 현재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18세기까지 쓰시마의 자아인식 논리에는 조선 측의 언설을 변용시킨 내용과 일본 내부에서 통용되고 있던 언설의 맥락이 섞여 있었으나, 19세기 이후 쓰시마의 역사서 편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둘을 분리하고 조선의 문맥을 배제해서 쓰시마가 애초(신화 시대, 고대)부터 일본 측에 속해 있던 것으로서 설정한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雨森芳洲의 ‘藩屛’論및 그에 대한 滿山雷夏의 비판
3. 18세기 초기 쓰시마의 역사서에 보이는 자아인식과 ‘번병’ 개념
4. 19세기 초기 쓰시마의 역사서에 보이는 자아인식과 ‘번병’ 개념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