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가영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8호
발행연도
2020.6
수록면
207 - 238 (32page)
DOI
10.37331/JKAH.2020.06.98.207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가야 제국과 고구려의 관계는 기록이 소략하여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 글에서는 3세기부터 6세기 중반까지 가야 각국이 고구려와 어떻게 관계를 맺었고,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가야 제국은 고구려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직접 교섭하거나 지속적으로 교류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고구려의 영향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구려에 의해 낙랑·대방군이 축출된 이후 고구려와 신라를 중심으로 전개된 새로운 교역체계 속에서 신라가 가야보다 앞서 나가게 되었다. 400년 고구려군의 남정 이후 신라는 낙동강 하구 교역권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4~5세기의 고구려와 북방 문물은 신라를 매개로 가야 사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가야사에 가장 큰 외부 충격으로서 400년 고구려군의 남정이 평가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금관국(금관가야)에 한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안라(아라가야)를 비롯한 다른 가야 세력들은 그 영향권 밖에 있었다. 가야 제국은 400년 이전부터 변화하고 있었으며, 그 변화의 원인은 낙동강 하구 유역으로 진출하려는 신라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금관국의 쇠퇴에서 비롯되었다. 고구려를 등에 업은 신라가 가야 제국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각국은 새로운 진로 모색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대가야와 안라가 각각 고구려와 교섭했던 것이 확인되지만, 모든 가야 세력들이 동시기에 고구려와 관계를 맺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역학관계에 따라 가야 제국 중 일부가 신라·백제와 함께 고구려에 대항하기도 하고,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고구려와 손을 잡기도 했다. 고구려 역시 백제와의 대립 구도 속에서 필요한 경우 가야 세력과의 연계를 도모하였다. 이처럼 가야 각국이 개별적으로 고구려와 교섭하였고, 교섭은 일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고구려가 가야 사회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가야와 안라가 백제와 신라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우에 따라 고구려를 외교적 수단으로써 활용했다는 점에서 고구려와의 교섭은 그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4~5세기 전반의 가야 제국과 고구려
III.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의 가야 제국과 고구려, 그 교섭과 한계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0-911-000845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