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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24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3 - 10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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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개성에 소재하는 숭양서원의 건축 속성을 서원이 세워진 장소와 주변환경, 건물 배치, 외부공간 구성과 건축물을 중심으로 고고한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하여, 숭양서원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숭양서원은 고려 시대 개성의 거의 중앙에 위치한 자남산의 동남쪽 산자락에 위치하며, 정몽주가 살았던 집터에 새로 계획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숭양서원 영역의 앞부분에는 강학공간이, 그 뒷부분에는 제향공간이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배치는 남계서원 이후 정립된 조선시대 서원 배치의 전범을 따른 것이다. 숭양서원의 외문 밖에는 우리나라의 여타 서원에서는 보기 힘든 노둣돌이 2벌 있다. 출타하기 위해 말을 탈 때, 출타하여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말에서 내릴 때 각각 사용하였던 것으로 판단되며, 이는 숭양서원 터가 정몽주의 옛 살림집이었음을 말해준다. 강학공간에 속하는 동재는 가운데에 대청이 있고 그 좌우에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는 온돌방이 있지만, 서재는 내부공간 전체가 통칸으로 트여 있다. 강학공간과 제향공간 사이의 경사지에는 서로 병행하는 세벌의 계단을 설치하여 각 계단마다 사우와 통하는 신문을 내어 세 신문을 모두 합하여 삼문이 되는 형식을 하였다. 제향공간에는 숭양서원이 1871년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은 내력, 정몽주의 행적, 사우에 배향된 인물들 등을 알 수 있는 「숭양서원기실비」와 「유명고려문하시중시문충포은정선생서원비」가 있다. 제향공간의 중심인 사우는 우리나라 여타 서원에서 볼 수 없는 내부공간 구성을 하였다. 사우의 가장 서쪽 한 칸은 정몽주의 화상을 모신 영당이고, 영당의 오른쪽 세 칸은 사우에 배향한 인물들의 신위를 모신 정실(신실)이다. 사우의 양 측벽은 사우 양 측면의 나무 기둥에서 더 밖으로 각각 약 70cm되는 공간을 띄운 다음 벽돌로 화방벽처럼 쌓았고, 그 위에 기와로 눈썹지붕을 얹었다. 눈썹지붕 상부에 해당하는 박공면도 눈썹지붕 아래의 벽면보다 벽돌을 약간 안으로 들여쌓았다. 우리나라의 여타 서원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측벽 처리 방식이다. 20세기 어느 시점에 숭양서원의 외문과 강학공간의 남쪽을 구성하는 담장, 재사의 측벽이 바뀌었다. 외문은 원래 1칸 건물이었으나 3칸으로 바뀌었고, 외문과 강학공간 사이에는 담이, 담 중앙에는 외문에서 강학공간으로 출입하는 문이 있었지만, 이 담과 문이 철거되었다. 이 시기에 동재와 서재 남측 측면 벽에 있던 풍판도 제거되었다. 현 숭양서원에는 서원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고직사, 전사청, 장판각 등이 확인되지 않는다. 옛 배치도와 사진에는 고직사로 볼 수 있는 건물이 있으나, 현 숭양서원에는 없다. 조선시대의 서원 건축에는 서원을 구성하는 건물들의 당호, 기문, 제영 등이 있어서 성리학자들이 지향하는 목표와 사상을 더 강화시켜준다. 현재 파악되는 숭양서원의 당호는 문충당 뿐이며, 외문, 강당, 동재, 서재, 신문 등 여타 건물들의 당호는 알 수 없다. 옛 사진을 보면, 숭양서원 강당에는 기문들이 걸려있는데, 현재 강당 건물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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