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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곽경상 (순천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20집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123 - 155 (33page)
DOI
10.52271/PKHS.2021.09.1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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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현대사의 핵심 생산입지인 울산 공업항 건설이 추진된 배경과 개발 과정에 대해서 살폈다. 1930년대 후반 전시총력전체제에서 시작된 울산에 대한 공업화 논의와 공업항 건설이 본격화된 것은 해방 이후였다. 1950년대 장생포에 방치된 정유시설을 복구하기 위한 활동 속에서 공업항 개발이 모색되었다.
국내 정유생산의 자립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울산에 배치된 시설과 이를 활용한 공업화 계획이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계획을 주도했던 전민제와 남궁연은 생산입지로서 울산이 가지는 이점과 향후 성장 전망을 제시했는데, 그들의 주장과 계획 등이 군사정부 시기 실현된 것이었다. 1961년 군사정부가 자본가와의 협력 속에서 추진한 공업센타의 입지를 울산으로 선택한 배경에는 남궁연과 전민제의 막후 역할이 중요했다. 그렇게 울산이 공업센타로 지정되면서 정유, 비료, 석유화학, 조선으로 이어지는 공장 건설과 공업항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 공업항 개발에 있어서 주목되는 것은 ‘단지식 전략’이었다. 국가가 생산공장유치를 위해 부지는 물론, 항만과 공업 인프라를 건설하는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는 새로운 토건기구의 등장과 개발에 대한 새로운 접근 속에서 진행되었다. 울산개발계획본부와 울산특별건설국 등 강력한 토건기구의 활동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단지를 개발했던 산업기지개발공사의 모티브가 되었다.
또한 주목할 점은 공업단지 개발에서 나타난 국가와 기업의 활동이다. 기본적으로 공업단지 개발은 국가가 진행했지만, 기업 역시 자신들의 이익과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했다. 이들은 공장의 부지 매입은 물론, 공장의 전용부두도 지원받았다.
기업의 활동은 입지를 변경하기 위한 노력으로도 나타났는데, 조선소 추진의 주체였던 현대건설은 정부가 선호했던 염포지구가 아닌, 미포지구를 조선소 입지로 요청해서 관철하였다. 이로써 울산은 장생포에서 시작해 개운포까지 연결되는 매암지구와 염포지구 그리고 미포 일대까지 항만 전체가 공업항으로 개발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해방 전후 울산항을 둘러싼 공업화 논의와 항만 개발
Ⅲ. 울산항 기본계획의 완성과 기업의 대응
Ⅳ. 현대조선소 부지를 둘러싼 갈등과 미포지구 개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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