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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신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69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73 - 20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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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내전의 형세가 극도로 악화된 1949년, 장개석은 세 번째 하야를 단행하였다. 총통직에서 물러난 장개석은 정치적 책임에서는 자유로웠으나 하야가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은 아니었다. 인퇴 전 금융․정치․군사 등 방면에서 취한 조치들은 그가 여전히 공산당과의 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국공내전 승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야 후에도 장개석은 국민당총재의 자리는 유지하여 혁명영수 자격으로 외교적 활로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亞洲 각국이 합심하여 공산주의 세력에 맞설 것을 호소하며 ‘원동연맹’창설을 통해 이를 구체화하고자 하였다. 그는 구역적 반공조직의 강화가 세계질서 유지를 위한 가장 절실하고 확실한 안전방법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냉전 초기 특수한 국제정세와 환경 아래서 각국을 돌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 연맹체를 결성하여 즉각적인 위협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 장개석의 구상이자 역할이었다. 그러나 집단의 형성과 집단방어의 주도권이 실력을 갖춘 패권국가 수중에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 약소국들이 주축이 된 연맹은 실현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장개석이 연맹 조직을 위해 분투한 것은 냉전 초기 아시아 신질서의 발전적 방향을 모색한 사례였다는 점에서 그의 식견이 발휘된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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