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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상욱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우리어문학회 우리어문연구 우리어문연구 제54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357 - 411 (5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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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鐺洲集』의 著者 鐺洲 朴琮(1735~1793)은 咸鏡道 鏡城 출신의 유학자로 18세기關北地方 유학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 華谷 朴興宗(1600~1687)과 松巖 李載亨 (1665~1741)을 私淑하였으며, 農巖 金昌協(1651~1708)과 陶菴 李縡(1680~1746) 의 학풍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안동의 陽坡 柳觀鉉을 비롯 영남 남인들과도 교유하였으며, 澹窩 洪啓禧(1703~1771)의 제자가 되었고, 이후 스승 澹窩를 따라 上京해서 楊州의 江泉亭과 渼湖의 石室書院을 중심으로 渼湖 金元行(1702~1772)을비롯해 많은 문인들과 교유를 하였으며, 經史에 禮學에 뛰어난 선비였다. 하지만그는 선비로써의 立身揚名을 시험하였으나, 함경도 문인으로써의 상황을 직시해벼슬을 포기하고, 관북문인으로써 지조와 절의를 지켰으며, 朱子學을 배우고 禮學 을 실천하는 전형적인 유학자이면서 山林處士의 삶을 살아간다. 훗날 1777년에 담와의 손자[洪相範]가 정조시해미수사건을 일으킨 일로 인해연루된 자들 모두가 죽임을 당할 때에, 박종만은 節義를 지키다 寧海로 16년간의기나긴 定配에 처해지지만 곧은 의지로 더욱 학문에 邁進하고, 자연을 벗 삼아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새로운 기회로 삼았으며, 配所에서 餘生을 보내다 타계한다. 이처럼 鐺洲는 평생토록 학문을 궁구하고 벼슬에 연연하지 않은 함경도인의 강인한 기개와 절의를 가졌으며, 그의 인물관과 의식세계는 함경도 문인의 특징을 대변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담와, 미호 兩先生을 스승으로 모시고 龜溪 洪季修, 鳳巖 韓夢麟, 楡軒 韓夢弼, 畏菴 洪章海, 疏江 金鍾健, 漁南 李栻, 蘆厓 柳道源 등 많은 문인들과교유하며 학문 활동을 펼쳤으며, 고향에 돌아와서는 당주서당 등을 통해 많은후학을 가르쳤다. 그의 학문은 훗날 관북부자 龜巖 李元培(1745~1802)를 거쳐晦堂 玄翊洙, 屯塢 林宗七(1781~1859)로 계승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당주 박종의 道學淵源은 우암 송시열과 농암 김창협을 중심으로 화곡박흥종 - 송암 이재형 - 도암 이재 - 담와 홍계희, 미호 김원행 - 당주 박종순의 학문적 연원을 가지며, 당주 박종은 18세기 北關四賢의 맥을 이었으며, 관북학문을 履修⋅傳授한 정통성을 지닌 관북유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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