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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용진 (국립중앙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44號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31 - 54 (24page)
DOI
10.14769/jkaahe.2022.08.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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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2020년까지 경주 황용동 황용사지의 1, 2차 시·발굴조사에서는 기존의 사찰터에서 출토된 불교공예품과는 다른 새로운 금속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매납 유구에서 출토된 퇴장유물의 성격이라는 것은 제외하면, 구성과 성격이 전혀 다른 유물들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기존의 사찰터에서는 공양구 위주의 금속공예품들이 주로 출토되었지만, 경주 황용동 황용사지에서는 금동수면, 금동사자, 금동보당과 기단, 금동팔각받침, 금동귀꽃 등 장식과 장엄의 성격이 강한 금속공예품들이 출토된 것이다. 금동귀면은 낚시바늘과 같은 연꽃봉오리를 입에 물고 있어 안압지 출토품과의 비교를 통해 벽걸이나 옷걸이로 용도를 추정하였다. 금동사자는 앞다리와 뒷다리를 쭉펴고 머리는 왼쪽으로 돌리고, 목덜미와 앞다리, 뒷다리에는 음각으로 갈기와 털, 반점이 표현되어 있고, 특별한 장식에 사용된 것으로 보았다.
금동보당은 6점으로 작은 것을 큰 것에 끼우는 방식이었고, 우리나라 금동보당의 원류가 통일신라시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작은 것을 큰 것에 끼우는 통일신라시대의 방식은 1109년 조성된 밀양 소태리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금동보당에도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금동팔각받침은 형태상 금동팔각사리장엄구나 금동팔각대좌의 기단부와 유사하지만, 크기로 보아 금동팔각대좌에 더 가까울 것으로 보았다. 금동귀꽃은 크기로 보아 기물의 일부라기 보다는 불전을 장엄하던 장엄구로 보았다.
경주 황용동 황용사지에서 이처럼 정교하게 제작된 금속공예품들이 출토된 것은 황용사지가 일반적인 사찰이 아닌 왕실 또는 귀족과의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왕경에서 동해구로 가는 교통로 상에 위치한 황용사지는 깊은 계곡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왕경의 사찰에 버금가는 회랑과 가구식 기단의 불전, 매납 유구에서 장식성이 강한 금동수면과 금동귀꽃, 금동사자와 금동보당 등이 출토될 수 있었던 것은 황용사가 통일신라시대 교통로 상에서 특별한 역할이나 기능이 있었던 때문으로 보인다. 더불어 황용사지 출토 불교공예품은 『불국사고금역대기』의 소성왕대 개명 관련 기록과 유사 사례를 통해 제작 시기는 9세기로 귀결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황용사지 출토 불교공예품은 통일신라시대 불교공예품의 수준과 다양성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유물들이고, 고려시대 불교공예의 선구적인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더불어 황용사가 어떤 성격의 사찰이었는지는 기록이 적어 알 수 없지만, 출토품들의 용도와 성격을 보면, 통일신라 왕실 또는 그에 준하는 세력과 관련이 있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금동수면과 금동귀꽃 등은 안압지 출토품과 유사하여 통일신라 왕실 공예품이 공유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황용사 관련 기록과 출토 불교공예품의 현황
Ⅲ. 황용사지 출토 불교공예품의 용도와 성격
Ⅳ. 황용사지 출토 불교공예품의 제작시기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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