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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곽차섭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서양사론 제126호
발행연도
2015.9
수록면
90 - 116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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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마키아벨리와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를 새로운 시각에서 좀 더 자세히 검토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반 메디치 음모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혀있던 1513년 2월에서 3월 사이, 자신의 구명을 호소하는 두 편의 소네트 「족쇄」와 「뮤즈」를 줄리아노에게 써 보낸다. 방면된 후에는 그것이 줄리아노 덕분이라고 믿는다. 이어 친구인 베토리에게 쓴 편지들을 통해 줄리아노가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한다. 그는 1513년 12월에 쓴 『군주론』을 원래 줄리아노에게 바치려 했으며, 이듬해 봄에는 마치 시어로 표현된 헌정사처럼 보이는 소네트 「개똥지빠귀」도 쓴다. 그해 12월, 그는 교황이 피렌체가 누구와 동맹을 맺을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묻는다는 베토리의 편지에 고무되지만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했고, 1515년 2월에는 마키아벨리를 휘하에 넣지 말라는 줄리오 추기경의 경고까지 나오게 된다. 비록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는 못했다 해도, 마키아벨리는 왜 줄리아노가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을까? 이에 대한 한 대답은 아마 그가 1513년 이전에 이미 줄리아노와 모종의 관계에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관직에서 쫓겨나기 직전인 1512년 9월, 그가 줄리아노의 요청으로 만토바 후작부인 이자벨라 데스테에게 당시의 피렌체 정세를 메디치가에 우호적인 입장에서 설명한 편지를 보냈다든지, 나아가서는, 아직까지는 가설이지만, 그가 관직에 몸담기 전인 1498년 이전에 이미 줄리아노와 우정을 나누었음을 암시하는 칸초네 「활과 날개」와 카피톨로 「월계수」를 썼다다든지 하는 점 등이 결코 간과하기 어려운 실마리들이다. 이러한 점들이 곧 마키아벨리가 메디치파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줄곧 공화주의자였다는 것은 거의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줄리아노를 매개로 메디치가의 신뢰를 얻으려 애썼다는 점도 마찬가지로 분명하다. 메디치가는 그의 삶과 사상에서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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