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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준형 (한국영상자료원)
저널정보
한국영화학회 영화연구 영화연구 제96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5 - 53 (49page)
DOI
10.17947/FS.2023.6.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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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70년대 중후반, 보다 정확히는 1974년부터 1979년 사이 우수영화선정 제도와 외화수입쿼터 배정제도 간의 커넥션을 살피는데 초점을 둔다. 애초 질적으로 우수하거나 수출 등 특출한 성과를 올린 몇몇 영화에 대해 외화수입권을 보상하던 우수영화 선정 제도는 외화수입권을 특정 정책 영화 범주(반공, 계몽, 문예)와 수출실적을 중심으로 배분한 1960년대 후반부터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때 정부는 영화의 미학적 성취나 질적 완성도보다 정치사회적 효용성을 앞세우는 정책영화의 제작과 외화수입권 배정을 연계하는 모델을 발명해 냈다. 특히 1974년부터 우수영화제도라는 이름으로 외화수입권 거의 전부가 우수영화 제작사에 주어지게 되면서 이 제도는 영화산업 주체들의 생존을 좌우할 핵심 키워드가 된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우수영화는 이전의 반공과 계몽영화, 안보영화, 국책영화, 민족영화 등 다양한 정책과 공식 담론의 범주들을 통합하였다. 정부는 우수영화선정을 직접 주관하였고, 정권의 이해관계나 권력의지를 영화산업 전체에 투사하는 한편 산업과 콘텐츠의 흐름을 지배했다. 요컨대 1970년대 중후반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이 영화산업을 지배했던 가장 강력한 정책적 지렛대가 바로 외화수입쿼터와 연계한 우수영화 선정 제도였다고 하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70년대 우수영화-외화수입쿼터 커넥션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측면에 주목하여 글을 구성하였다. 1) 우수영화선정제도-외화수입쿼터제도 커넥션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2) 안보영화, 민족영화, 국책영화 등 유사 혹은 경쟁하는 개념과 담론들을 흡수하며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1970년대 “우수영화”의 개념 분석을 통해 1970년대 국가와 영화의 관계성을 모색해 보았다. 3) 1974년부터 1979년 사이 우수영화로 선정된 161편 영화의 목록을 바탕으로 우수영화 선정 제도가 당시 한국영화산업과 장르의 흐름 혹은 작가에게 미친 영향을 당시 산업구도·관행의 변화 및 하이틴영화와 임권택 감독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했다.

목차

국문요약
1. 들어가며
2. 우수영화-외화수입쿼터 커넥션의 역사
3. 정치에 오염된 우수영화: 국책의 미학화
4. 국가가 만드는 한국영화의 흐름: 우수영화-외화수입쿼터 커넥션의 영향
5.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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