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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대환 (국립경주박물관)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58호
발행연도
2023.8
수록면
33 - 6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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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라 6부 중 모량부 지역으로 추정되는 건천 지역의 고분군을 근거로 집단을 설정하고, ‘고분군 내 계층화’, ‘고분군 간 위계화’라는 취락고고학의 방법론으로 유력자, 유력집단, 중심집단과 주변집단을 추출한 후 통시적인 집단의 변동을 서술한 것이다. 기원 전후 목관묘군은 촌 단위로 조영되었고, 목곽묘군이 조영되는 3세기 전후에는 촌락 수준과 읍락 수준의 취락들이 분포하고 있었는데, 읍락 규모의 세력은 사로국을 구성한 유력집단이었다. 4세기부터 사라리 고분군에서 세장방형 목곽묘가 조영되는데, 이를 신라 중심세력의 하위 집단으로 재편된 결과로 보는 해석을 근거로 건천 지역이 하위 집단으로 편재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건천 지역 내부에서는 여전히 사라리 집단이 중심집단이었으며 고총 출현 직전까지 사라리 집단과 금척리 집단이 공존했다. 5세기 후반부터 금척리 고분군에서 고총이 출현하는데, 이것을 근거로 금척리 집단이 모량부의 중심집단으로 부상한 것으로 해석했다. 금척리 고분군에 3세기 말부터 무덤이 존재하는 것을 근거로 이 집단은 신라 중심지로부터 이주해 온 집단으로 보기는 어렵고, 눌지 세력의 찬탈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성장한 집단으로 추정했다. 방내리 고분군은 6세기 전반부터 축조되기 시작해 7세기까지 조영이 된다. 6세기 동안에는 금척리 고분군과 조영 기간이 겹치기 때문에 묘역이 이동했다는 기왕의 설명과는 달리, 금척리 집단에서 왕비를 배출한 특정 가계가 방내리 고분군을 조영한 주체였다고 주장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분군으로 본 모량부 내 집단
Ⅲ. 모량부 내 집단의 변동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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