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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명제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51집
발행연도
2023.7
수록면
217 - 251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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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조·청 관계에서 기자가 활용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명·청 교체 이후 조선 내부에서는 ‘교화 군주’ 기자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소중화 조선’과 ‘이적 청’을 구분짓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사신 외교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조선의 원접사는 청 사신과 시문을 수창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강제로 수창에 동원되는 경우에도 ‘책봉 제후’ 기자를 활용하지 않았다. 반면 청 사신의 경우, 18세기에 접어들면서 기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들 역시 기자를 통해 동질성을 확인하기보다는 청의 정치적 우위를 과시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책봉 제후’ 기자의 이미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선은 외교문서 안에서 ‘책봉 제후’ 기자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청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였다. 이는 청과의 마찰을 원하지 않았던 조선의 대응책 중 하나였다. 다만, 정조대에 이르면 보다 적극적으로 기자가 활용되는데, 이는 정조대를 기점으로 조·청 외교 전략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암시한다. 청의 경우 외교문서 안에서 기자를 활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기자가 한·중 관계의 오랜 상징으로서 기능해왔음을 청의 위정자들이 인지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조선과 청은 엇갈린 행보를 지속하였다. 기자 활용이 일방통행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은 조·청 관계가 전형적 조공관계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은 청을 중화로 인정하지 않았고, 청 역시 전통적인 중화질서의 세계관으로 조선을 사유하지 않은 것이다.

목차

요약
1. 서론
2. ‘책봉제후’ 기자의 위상 변화와 외교 현장에서의 공고한 지위
3. ‘책봉 제후’ 위상의 상실과 청 사신의 정치적 활용 : 사신 외교의 차원에서
4. 일방적 충성 서약과 의도적 외면 : 외교문서의 차원에서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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