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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영은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44호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57 - 8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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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창·영광지역을 대상으로 백제 중앙과 지역 정치체 간의 관계 변화 및 백제 지방지배 과정의 시기별 추이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백제 지방지배 연구의 주요 쟁점인 백제의 영역확장 과정과 지배방식 포착이라는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5세기 중엽 이후 이 지역 정치체와 백제 중앙의 정치적 관계는 고창 봉덕리 고분군의 축조를 통해 파악할수 있다. 봉덕리 고분군의 축조세력은 고대한 분구에 백제 중앙의 신 묘제인 횡혈식석실을 수용하였으며, 금동신발로 대표되는 백제 중앙의 위세품을 부장하였다. 이러한 고총 축조와 위세품 사여는 지역 정치체의 내적성장과 백제 중앙의 지배력 강화가 결합한 산물이다. 백제 중앙은 지역 유력 세력과의 우호적 관계를 바탕으로, 노령산맥 이북에 대한 지배를 안정화하고 영산강 하류로의 수륙 교통로, 왜와의 연안항로 확보의 이점을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성기 후반은 백제와 고구려의 대결을 중심으로 주변국들이 관여되면서, 환서해권을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고 서해 연안항로의 중요성이 제고되던 시기였다. 고창·영광지역에 축조되는 전방후원형 고분 역시 서해 연안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높아지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의 전방후원형 고분은 백제 중앙과 현지 지역 집단, 그리고 왜가 서남해안 연안항로를 통해 연결되며 관계를 맺는 과정의산물로 이해해야 할 것이며, 고분의 입지나 칠암리 1호분의 조사 성과를 통해 이러한 연결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웅진기 백제는 지방지배의 적용 대상을 남쪽의 영산강유역권으로 본격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지방지배 방식의 전환·정비를 모색하였다. 고창·영광지역 내에서도 기존에 백제 중앙과의 관계가 뚜렷하지 않던 지역에백제 중앙과 관련된 유구, 유물이 나타난다. 이는 한성기 후반까지 봉덕리 고분군과 같은 특정 거점과의 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역을 지배하던 방식에서, 점차 전 지역을 획일적인 통치 시스템 내에 편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감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자료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고창 흥덕면 오호리의 석실에서 출토된 청동 인장은 중앙과 밀접하게 관계되며 그 일대와 교통로를 관장했던 지방관적 성격의 인물이 존재하였음을 시사한다. 사비기가 되면, 백제는 방-군-성 체제를 통해 전 영역을 지방통치제도 내에 편제하는데, 이때 고창· 영광지역은 고부를 중심으로 하는 중방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중앙의 통치력은 중방을 매개로 각 지역 사회에 전달되었으며 분묘와 생산체제의 규격화가 수반되었다. 이로써 고창·영광지역은백제의 완전한 ‘지방’으로 편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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