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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보드래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38호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193 - 22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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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민족주의적 해석 일변도로 이해되어 온 3?1 운동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려는 시도의 일부다. ‘깃발’과 ‘만세’라는, 3?1 운동을 통해 가장 두드러진 시위 양식에 대한 검토를 구체적 방법으로 삼았다. 먼저 깃발에 대해서는 3월 1일과 5일 등 서울의 주요 시위에 태극기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해당 시위에서는 오히려 독립만세기와 적기(赤旗) 등이 주였던 것이, 운동이 전국화되고 자율화되면서 태극기가 대세가 되기 시작하지만, 이 때도 ‘독립만세’ 등을 적어 넣음으로써 태극기를 보충?수정하려는 시도는 광범하게 존재했다. 태극기가 옛 대한제국의 국기라고 할 때, 단순히 옛 나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 나라를 기대하는 심리가 그렇게 표현됐다고 하겠다. ‘만세’라는 구호 역시 마찬가지다. ‘만세’는 ‘대한독립만세’ 혹은 ‘조선독립만세’의 줄임말인 동시 민족적?정치적 차원 외 각종 차원에서의 불만과 희망 또한 표시했다. 3?1 운동기에 깃발이나 구호를 통해 표현된 불만이나 희망의 내용이 명확했던 것은 아니다. 공화제에 대한 요구가 등장했고 재산 균분 등의 소문이 있었지만, 변조된 태극기가 보여주듯 3?1 운동의 대중 심리는 옛 체제를 옹호하는 보수적 심리와 새 질서를 실험하려는 급진적 정신 사이를 요동치고 있었고, 만세의 모호성이 보여주듯 개인에서부터 민족과 세계에 이르는 정체성의 여러 차원을 아울렀다. 제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이상주의와 상응하는 가운데 3?1 운동은 정감록식 소망에서부터 세계국가에의 전망에까지 접속된 다층적 사건이었다. 그 흔적은 「표본실의 청개구리」, 「폭풍의 역사」 등의 소설에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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