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민우 (상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중국학회 중국학보 중국학보 제107권
발행연도
2024.2
수록면
85 - 114 (3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1970~1980년대 대만에서 ‘우리의 노래를 부르자’를 외치며 탄생한 ‘교원민가’에서 ‘우리’가 지칭이 대상이 무엇인가에 주목한다. 교원민가의 형성 배경과 탄생 그리고 변화의 맥락을 살펴본 후, 최종적으로는 교원민가 주요 작품의 텍스트 분석을 통해 노래에 담긴 ‘우리’ 즉 대만 거주민의 정체성을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만에 살고 있는 사람 대다수가 공감할 만한 ‘우리'의 음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생각은 교원민가를 출현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교원민가를 불렀던 가수들에게 있어 우리의 음악은 이전에 유행했던 대어 대중음악도, 상하이시대곡 스타일의 음악도, 정치선전곡도 아니었다. 미국의 포크송은 더더욱 우리의 음악이 아니었다. 어쿠스틱 악기에 기반을 둔 포크송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하며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창작⋅보급되었던 교원민가는 ① 현대민가운동 시기(1975.06.~1976.11.), ② 단장사건 시기(1976.12.~1977.11.), ③ 「금운상」 개최 시기(1977.12.~1985.), 세 단계로 구분하여 발전했다. 교원민가에서 대만 거주민의 정체성은 중국인 정체성과 대만인 정체성으로 이원화되어 표출되었다. 교원민가의 탄생을 알린 양셴 등은 중국에 정체성을 의탁한 노래를 다수 창작했다. 지리적 개념과 동포 의식으로 중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 「향수사운」과 당당한 중국인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 「서출양관」이 대표적인 노래다. 리젠푸는 「용의 후예」에서 ‘우리=중국인'을 확인함과 동시에 중국인의 단결을 촉구했다. 양셴과 다른 음악 스타일을 추구하고자 한 리솽쩌 등은 노래를 통해 대만 거주민의 정체성이 지금 살고 있는 이 땅 즉 대만섬에 있음을 표출하고자 했다. 「소년 중국」에서는 새로운 모습을 한 ‘소년 중국’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했고, 「홍마오성」에서는 300년간 지속되었던 대만의 슬픈 역사를 정리하자며 대만 거주민의 단결을 외쳤다. 「메이리다오」에서는 민족의 뿌리가 바로 여기 대만섬에 있다며 대만서사를 제시했다. 판안방은 「외할머니의 펑후만」에서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펑후만 해변에서 보냈던 추억과 가족애를 묘사했다. 교원민가가 쇠퇴한 이후, 대만의 대중음악계에서는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1980~90년대 대만 대중음악은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노래 속에 대만 거주민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대만 출신 가수들이 중화권 전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중화권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 ‘나는 대만인이다'를 천명하는 것은 활동 중단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만 대중음악계에서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정체성 문제와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재, 1970년대 대학생 가수들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책임감의 발로로 진행된 대만 거주민의 정체성 논의는 되새겨봄직하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