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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현숙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83집
발행연도
2016.9
수록면
127 - 15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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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왕권의 대내적인 성장의 모습보다는 전쟁 및 외교와 교역 등 대외관계의 측면에서 3~4세기 백제의 대외관계와 왕권의 추이와 성장 과정에 대해 고찰하였다. 전쟁 및 외교와 교역 등 대외관계는 왕권의 표상과 성장에 긴밀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전쟁 수행을 통해 백제 왕은 대내적으로 고도의 적응력이 있는 관리자로서의 기능을 제공받았을 뿐 아니라, 획득한 인적 · 물적 자원을 토대로 왕권으로 대표되는 중앙의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또한 국가 간의 외교와 이로 인한 교역은 물질적 물품 교환뿐만 아니라, 가치 · 상징체계 · 문화적 자극 등 추상적 정보까지도 교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회변화와 성장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능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 축적된 富와 情報는 정치체를 통합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도구로 작용하였다.
3세기 이전 백제는 마한 사회의 외곽에서 중국 군현의 직 · 간접적인 공격에 저항하는 한편으로, 교역의 이익과 그 선진문물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해 나갔다. 온조왕 이후 백제의 王들은 전쟁과 교역을 통해 왕권을 신장시켜 나가고 있었다.
백제의 3세기 왕권과 관련해서는 고이왕대를 주목해 보았다. 帶方郡의 崎離營 전투에서 마한의 구세력들이 전통적 구심력을 상실함에 따라, 고이왕은 그 계기를 활용하여 고유한 내적 구심력을 회복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마한을 대표하게 되었다. 또한 한군현의 영향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西晉과의 교섭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백제 정치체의 대내 · 외적인 통합력을 제고시켰다.
그러나 고구려에 의한 낙랑 · 대방군의 소멸과 서안평의 장악으로 인해 西晉에서 낙랑 · 대방군을 거쳐 한강유역의 백제로 이어지는 주요 세력들은 재편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낙랑과 대방군의 소멸로 이주민이 몰려오면서 백제는 이들을 이용하여 중국과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게 되었다. 근초고왕은 이러한 대외적인 요인과 3세기 이래 구축된 왕권을 바탕으로 4세기 후반에도 왕권의 성장을 제고시킬 수 있었다.
근초고왕대의 남방 경영은 고구려전에 대비한 후방의 안전과 백제-가야-왜로 이어지는 백제 중심의 교류체제를 성립시켰다는데 의미를 가진다. 또한 백제의 東晋과의 교섭은 근초고왕대의 대내외적인 발전에 따른 고양된 자신감이 대외관계로 표출된 것이며, 백제의 본격적인 중국과의 교섭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이와 같이 3~4세기 백제 왕권은 ‘왕 개인에게 집약되는 권력 그 자체를 지칭하는 협의의 개념’을 넘어, ‘지배계급의 결집의 핵심 존재인 왕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권력 및 기능의 총체를 가리키는 광의의 개념’으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3세기 이전 백제의 대외관계와 왕권
III. 고이왕대 대외관계의 진전과 왕권의 구축
IV. 근초고왕대 대외관계의 확대와 왕권의 성장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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