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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동훈 (고려대)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72호
발행연도
2018.8
수록면
39 - 84 (46page)
DOI
10.21490/jskh.2018.08.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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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遺民`이라는 용어 대신에 디아스포라(Diaspora) 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유민의 본래의 의미가 ‘멸망한 나라의 백성’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국가가 멸망하기 이전에 중국으로 유입된 이들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에 의하면 ‘디아스포라’는 고유의 족적 정체성과 함께 새로 이주된 지역에 소속감 등 심리적으로 兩屬的인 속성을 보인다고 한다. 이 시기에 중국으로 이주한 고조선, 고구려, 부여계 이주집단은 모두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었던 존재이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이들을 모두 ‘디아스포라’라고 정의했다. 이 시기에 중국에서 활약한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크게 3~4세기에 이주한 집단과 5~6세기에 이주한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3~4세기에 이주한 디아스포라로는 古朝鮮, 高句麗, 夫餘 계통의 이주민 집단을 들 수 있으며, 5~6세기에 이주한 디아스포라로는 고구려계 집단을 들 수 있다. 평성의 현재 지명인 大同에는 당시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고구려계 인물의 유적이 확인된다. 이들의 성씨는 고씨(高)와 개씨(蓋)인데, 특히 잘 알려지지 않았던 蓋씨와 관련된 유적이 다수 발견된 점이 흥미롭다. 또한 고조선계 성씨로는 낙랑 왕씨 인물들이 다수 확인된다. 과거 王씨와 拓王씨의 관계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는 견해가 있었지만, 연구 결과 탁왕씨는 왕씨에서 유래한 성씨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편 關中지역에도 고구려 유민들의 행적이 확인된다. 위진남북조시기 중국에서 활약한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수백 년 동안 그 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당시 중국의 이민족정책에서 주요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나라 때부터 중국의 漢族왕조는 자국에 복속된 유목민족을 분산 해체시키는 대신에, 중국 내지로 이주하여 북방민족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그들의 고유의 사회와 풍속을 유지하도록 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정책은 漢族을 대신하여 북방을 장악한 이민족정권에게도 계승되었다. 따라서 고구려 부여 이주민 집단 역시 중국화되지 않고, 고유의 족적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진남북조시기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중국에서 장기간 활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몇 개의 소집단으로 분리되어 분산 거주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지만, 6세기 관중지역에서 발견된 佛敎造像碑에서 확인되듯이 여전히 해당지역에서 고유의 습속을 유지하면서 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3~4세기 慕容燕政權下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3. 5~6세기 北朝政權下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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