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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기명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6호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5 - 50 (46page)
DOI
10.37331/JKAH.2019.12.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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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6세기 초에 세워진 포항지역 2비(중성리비, 냉수리비)와 해당 시기 고고학 자료를 서로 비교하고 연계함으로써 마립간기 신라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밝히는 데 있다. 자연 지형 및 자원에 기반한 유적의 분포와 특징을 분석하여 4~6세기에 걸친 포항지역 물질자료의 통시적 변화를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를 통해 포항 일대에 존재했었던 지역 정치체의 내부 구조와 지배 집단에 대해 접근하였으며 6세기 초에 세워진 2비의 쟁점거리를 재지 세력의 입장에서 비교 검토해볼 수 있었다.
포항지역은 지형적 경계와 유적의 분포를 기준으로 볼 때 6개의 읍락으로 구성되었으며 각기 단위별로 존재한 자연 자원과 교통적 입지도 달랐다. 일정 영역을 터전으로 해서 모든 읍락은 농업 자원, 교통로 입지, 물류(소금, 철 등) 유통 등과 같은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추진력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상정되며 흥해 국읍에 존재한 옥성리고분군은 이와 같은 변화상을 대변해주는 물질적 기록이라 여겨진다. 포항지역은 경주 왕경에 인접해 위치함에 따라 이른 시기에 직접 지배권으로 편입되었고 흥해 국읍은 신라 중앙에 의해 철저히 재편되었다. 마립간기에 접어들어 흥해 국읍의 인근에 남미질부성이 축조되는 현상을 제외하면 고총현상, 지역 양식 물품과 같은 물질문화가 전혀 확인되지 않아서 경주 왕경에 완전히 종속된 양상을 보인다.
5세기 후엽에 이르러 석실묘 조영으로 개시된 대련리고분군과 냉수리-흥곡리고분군이 대규모로 축조된다. 그 저변에는 고구려와의 외교 관계에서 비롯된 북쪽 동해안 일대의 정세 변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교통 요충지 지점에 실시한 신라 중앙의 후원이 깔려 있다. 이후 건립된 냉수리비는 일정 기간 이루어진 의도적 후원이 일단락되고 관련 재지 세력이 재편되는 상황을 말해준다. 이런 변화는 마립간 및 부체제를 벗어던진 신라가 여러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국가 지배력 강화와 지방 재편을 도모한 결과이다. 그로 인해 농업 관리에 대한 국가적 조치의 일환으로 흥해 국읍의 재편이 또다시 이루어졌고 토지 수취권의 분쟁을 종식 시킨 중성리비가 남겨진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유적의 분포와 특징
III. 구조 분석과 단계 설정
IV. 마립간기 포항지역 지배 세력의 변동과 재편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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