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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73집
발행연도
2021.2
수록면
209 - 256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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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대전형무소의 설치 배경과 개소 시점, 시설 확대 과정에 주목하였다. 아울러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사람들을 발굴하고 그 현황을 분석했다.
대전형무소 설치는 1918년 2월 사법부장관 고쿠부 산가이의 언급으로, 4개년 사업으로 예정되었다. 그러나 강점 후 일제 조선총독부의 예상과 달리, 늘어나는 수감자로 인한 감옥 과밀현상과 특히 1919년 3·1운동으로 인한 수감자의 급증으로 설치를 서둘러 1919년 5월 8일 ‘총독부령 제86호’로 확정 고시했다. 그리고 5개월 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같은 해 10월 19일 공식 개청식을 통해 개소하였다.
건축공사는 1918년 9월부터 1938년 10월까지 20여 년간 지속되었다. 이를 3단계로 나누어 보았다. 1단계는 수감자 수용을 위한 옥사 3개동 등 초기 기반시설이 마련되는 설립기이고, 2단계는 중앙간수소와 청사 등 수감자 감시와 관리를 위한 부대시설이 마련되면서 감옥운영이 정착되는 정착기이다. 3단계는 소위 ‘사상범’ 수용을 위한 격리 옥사시설 3개동과 여옥사가 설치되어 수용기능이 확장되는 확장기이다. 이 과정을 통해 1938년 11월 옥사 7개동에 감방 259칸, 총 수용 면적 2,282.84㎡를 갖추었다.
수감인원은 시설 확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개소 초기 1919년 12월 말 250명에서 1938년 12월 말 1,250명으로 5배 늘었다. 이 수치는 1938년 한때 전국 28개소 감옥 가운데 서대문형무소 다음으로 많은 숫자였다.
대전형무소 수감자는 신문기사와 수형기록카드를 참조하여 140여 명을 살펴보았다. 신문기사를 통해 그들의 행적을 살펴보았고, 수형기록카드를 통해 115명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연령대는 20대의 비중이 가장 높았으며 10대의 비중이 가장 낮았다. 형량은 징역 2년 이상이 가장 많았다. 죄명은 치안유지법, 보안법, 폭발물취체규칙 등 사상법률 위반이 대다수로 분석 대상 인원 대비 94.78%를 차지하였다.

목차

1. 머리말
2. 설치 배경과 개소
3. 시설의 확대
4. 수감자 현황과 특징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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