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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9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209 - 228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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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부는 궁궐과 중앙 및 지방 관청에서 사용되는 자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하여 전국의가마들 중의 일부를 자기소(磁器所)로 삼았다. 그러나 전국에서 분청자와 백자를 생산했던 수많은가마 중에 139 개만이 자기소로 선정된 기준과 배경에 대한 원론적인 접근은 현재까지 매우 적다. 이 논문은 조선 15 세기 자기소의 등재 기준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이다. 전국에 자리한 자기소의등재 기준을 파악하기 위해 황해도(黃海道)의 상황을 우선 살펴보았다. 조선시대 황해도는 도성(都城) 북쪽의 문화와 경제의 여러 요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황해도는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자리하며 고려와 조선의 수도와도 가깝다. 황해도는 도성의 북쪽에 자리하며개성(開城)과 평양(平壤)을 지나 의주(義州)로 연결되는 의주로(義州路)가 지나는 길목이다. 황해도의 서쪽 바다 역시 우리나라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뱃길이었다. 조선 15 세기 제작된 도자기도 육로와 해로를 통해 도성에 납입되었을 것이다. 실제 황해도에 자리했던 12 곳의 자기소(磁器所) 중에 5 곳이 의주로변에 자리하고 4 곳은 바닷가에 위치한다. 황해도지역 자기소는 75%가 육지나 바다의 중요 교통로 상의 고을에 등재되었다. 이는 생산된 자기를 비교적 손쉽게 도성으로 납입하기 위한 입지적 선택의 결과였을 것이다. 동시에 다분히 정치 목적이 강한도로인 의주로를 지나는 사신단과 관리의 접대를 위한 그릇의 확보 역시 황해도 자기소의 등재 기준에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소의 등재 기준에 의주로라는 요인이 적용되는 모습은 평안도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황해도 바닷가에 자리하는 자기소들은 등재된 고을의 수요를 감당하는 가운데 평안도를 지원하기 위해서도 활용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황해도 자기소는 생산된 그릇을 필요한 여러 곳으로 운송하여 적극 활용할 수 있는지가 등재 기준으로 적극 고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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